설계개요 |
도시는 끊임없이 관리된다. 정부와 지자체에 의해, 자본과 개발 논리에 의해, 청소노동자와 마을 주민회에 의해, 동네 터줏대감과 폐지를 줍는 노인들에 의해. 동시에,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도시를 사용한다. 화분을 내놓아 식물을 가꾸고, 리어카를 세워 전신주에 묶어두고, 펜스에 빨래를 넌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에는 흔적이 남는다. 계속되는 도시정비 속에서 살아남은 삶의 흔적들은 도시의 풍경이 되고, 살아 숨 쉬는 장소가 된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물건들을 통해 그 흔적을 쫓고, 그들이 도시에서 생존하는 방식을 발견한다. 경연대회라는 형식을 빌려 나와 너의 물건을 길에 내놓으며 직접 도시를 이용해 본다. 모든 것이 말끔히 정돈된, 매끈한 도시는 우리에게서 어떤 공동의 풍경을, 각자의 장소를 앗아갈까? 바위틈에 꽃이 피듯, 도시의 틈새에 물건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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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설명 |
[도시, 기생, 풍경]
도시 곳곳을 쫓아 기웃거리고 다닌 흔적을 담았다.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의 흔적을, 도시에 널부러진 물건들을 통해 포착하려 했다. 도시구조에 기생하는 물건, 장치, 사람, 행위, 공동체에 대한 사진과 영상 기록 작업이다. 영상작업에서는 사물/사람/관리/경계, 네 파트로 나누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도시 사용의 면면들을 하나의 시간에 엮어보고자 하였다.
[도시 노상 노동물 선언]
“도시에는 노동자(勞動者) 뿐 아니라 노동물(勞動物) 또한 존재한다. ... 그중 노상 노동물들은 대부분 사유지와 공유지의 첨예한 경계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업을 수행하는 존재들이다. ... 최근 들어 각종 세련된 도시재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도시의 일상을 지켜온 많은 도시 노상노동물들이 자신의 노동환경에서 무차별적으로 쫓겨나는 신세에 처했다. 이 상황을 규탄하고, 도시 노상노동물들의 노동권을 보장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 박준규, 「도시 노상노동물 선언」 중 일부 발췌
[도시 vs 자생 한판승]
도시는 계획과 자생이 뒤섞여 있는 생태장이다.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계획과 자생의 우위가 뒤바뀌며 결정되긴 하지만, 한국 특히 서울의 경우 계획의 힘이 압도적이다. 갖은 도시계획과 정비 속에서 살아남는 풍경이 있고 살아남지 못하는 풍경이 있다. 도시를 관리하려는 계획과 사용하려는 사람들 간의 위계관계, 그 틈바구니를 찾아보고자 하였다.
[도시선전 – 지역사회를 위한 도시낭비]
자본과 개발을 도모하는 도시선전 문구의 반대편에서, 자생적 도시를 위한 프로파간다를 제안해 본다. 거리의 인프라스트럭쳐는 활용 가능한 도시의 지형으로, 금지와 제한의 장치를 등받이로, 쉽게 치워지고 사라지는 물건과 풍경을 얼마든 언제든 이동 가능한 힘으로 바라본다. “갈 곳이 없으면 만들면 됩니다. 가벼움은 힘이 셉니다!”, “길을 가꾸고 집을 비우십시오. 집안을 더 넓게! 거리를 더 풍성하게!”
[도시기습]
바라보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나도 소금을 좀 쳐보고 싶었다. 적치와 점유의 빈틈을 쫓아 의자를 도시 곳곳에 대롱대롱 걸거나 묶어두었다. 쉼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쉼의 영역을 제한하기도 하는 쉼터를 피해, 자리를 펼 만한 곳들을 찾아 방석을 흩뿌려 놓았다.
[길거리 생존 경연대회]
“도시 어딘가에 나의 물건을 잠시 둘 수 있습니까?” 길거리 생존 경연대회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각 회차마다 정해진 기간 동안 자신이 선정한 생존물을 도시 어딘가에 생존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심사는 생존기간, 생존물과 대상지의 조화, 에피소드, 대상지/생존물의 선정 등을 기준으로 삼았다. 심사평과 함께 우승자에게 상패와 기념품을 수여하는 등 경연대회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도시에 개입하는 개인의 경험을 가장 중요한 기치로 여겼다. 24년 2월부터 6월까지 총 3번의 대회를 개최하였으며, 26명의 참가자와 3명의 심사위원, 그리고 총 34개의 생존물이 함께하였다.
[도시 생존 가이드라인]
관리되고 계획되는 도시환경 속에서, 자생하고 기생하며 살아남는 갖은 방법들을 11가지 방식으로 정리하여 가이드라인으로 제안한다. 모든 생존방식들은 실제 도시 전반의 물리적/환경적 구조를 전용하여 활용하는 모습들에 대한 관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지역사회와 호흡할 수 있는 생존전략이 도시를 이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임을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물건 자체가 아닌, 물건이 퇴적하고 교류하여, 생동함으로 만들어진 틈새의 공간들이다. 오래된 작은 화분과 플라스틱 의자가 두 빌라 할머니들의 만남을 끌어내듯이, 계획의 매트릭스를 빠져나간 틈새의 공간들은 강한 공동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도시를 몇 번이고 갈고 닦아도, 자생의 힘은 잡초처럼 도시 사이에 끊임없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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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 작품평 |
건축학과에서 4년 공부의 결과로 본인의 최고의 능력을 시험하고 뽐내는 기회가 졸업작품이다.
보통은 본인이 원하는 공간, 공간을 창조하고픈 목적에 출발하기 마련인데, 박준규 군은 첫 수업에 다른 학생과 달리 건축적 디자인의 소재가 아닌 평범하다 못해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는 곳에서 눈길을 주었다.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정해 놓진 않았지만 공간을 나누어 사용하는 규칙 등 공간을 만들 의도보다는 현상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
평면과 단면, 멋진 3d 투시도 같이 화려한 표현 기법으로 공간을 그려낸 것이 아니라 도시와 인간의 무심하고 덤덤한 대화를 다큐 같은 영상들로 담아 그러한 현상들을 발견하려 했고, 시험했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의도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현상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일반적 건축프로젝트처럼 자기주장으로 명확히 결론내고 솔루션을 제안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진 않았지만,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도시공간과 그것을 점유하는 사람의 공간 인식 방법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신선한 접근이었고, 의미 깊은 프로젝트라 생각한다.
이는 졸업전시 크리틱에 참여한 다른 여러 교수들의 찬사로 동의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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