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계개요 |
먼바다에서 쓰나미의 파도가 형성되었을 때 해변에 도착할 때까지 막을 도리는 없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쓰나미를 가까운 미래에 경험할 것이다. 삶보다 죽음이 익숙한 세계, 고령화의 시대. 삶에 대한 논의와 발전은 끝없이 이루어지는데, 죽음은 전통적이고 엄숙한 특성으로 정형화된 방식으로 처리된다. 똑같은 장례식, 똑같은 추모 방법. 삶의 다양성에 비해 죽음은 너무 일률적이었다.
사생(死生)이라는 말이 있다. 삶보다 먼저 죽음을 떠올리는 낯선 순서. 우리는 보통 ‘생사(生死)’라 말하며, 삶을 살다 죽음에 이른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건축공간은 그 익숙한 순서를 뒤집는다. 사생건축은 죽음을 우선에 두고 시작한다. 죽음을 상상하고, 죽음을 사유하며, 그 끝에서 오히려 삶의 실루엣을 더욱 또렷이 응시한다. 죽음은 종말이 아닌, 삶을 비추는 가장 깊은 거울이다.
삶의 공간인 서울 한가운데의 남산에서 사용자 주위의 죽음을 마주, 애도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사색하고 향유하는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이자, 추모관을 제안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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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설명 |
대상지는 서울 한복판의 남산 자락의 오래된 아파트와 시민에게 반환된 군 시설이다.
메인 로비에 들어선 방문객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종유석처럼 천장에서 빛을 품은 구조물과 마주한다. 이 ‘빛의 종유석’은 위로부터 쏟아지는 빛을 질서 있게 모아내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과 채도, 깊이를 품어내어 시간 그 자체를 공간으로 환원시킨다. 그것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삶과 죽음 사이의 여백을 직조하는 존재다. 빛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가장 깊고 어두운 곳으로 이어지는 통로와 마주하게 된다. 그곳은 죽음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침묵과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아 있다. 그러나 그 문턱에 이르기 전, 한 번 더 하늘의 빛을 마주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시선을 들어, 위에서 흘러내리는 빛을 바라보며 방문자는 삶의 의미를 조용히 되새기고, 그것을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한 채 어둠 속으로 발을 디딘다. ‘사생건축’에서 빛은 곧 삶이며, 어둠은 죽음이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빛의 줄기는 어둠을 헤치고 흘러나오는 생의 에너지이고, 그 빛에 의해 드러나는 그림자는 점차 다가오는 죽음의 형상이다. 이 빛과 어둠은 서로를 규정하며, 서로를 존재하게 한다. 남산 지하의 최심부에서 출발한 동선은, 빛의 종유석을 감싸 안으며 점차 지상으로 올라온다. 지상으로 올라섰을 때 방문자가 마주하는 것은, 묵직하게 서 있는 건축적 매스와 남산의 거친 자연이다. 지하에서 접했던 빛의 종유석과 사유의 관의 구조는 이곳에서 다시금 형상화되어, 죽음과 사유의 기억을 새로운 시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기존 남산맨션 아파트가 지닌 낮은 층고와 내력벽의 묵직한 틀을 그대로 품은 채, 주거의 기억을 문화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기능적 요구들이 새롭게 더해졌다. 기하학적 평면 위에 수직 코어와 화장실, 안내 데스크가 얹혀, 이들은 단순한 장치가 아닌 공간을 잇는 시적인 언어가 되어, 무심히 지나가던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남산맨션 아파트는 좌우상하가 대칭을 이루는 중복도 구조의 주거 건축으로,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견뎌왔다. 기존 남산맨션이 지니고 있던 내력벽 구조는 허물지 않고 온전히 보존하되, 낮은 층고라는 물리적 제약을 넘어서기 위해 구조체는 그대로 두고 슬라브만을 걷어냈다. 폭 3~4미터에 이르는 내력벽은 건드리지 않은 채 남겨두어, 남산맨션 고유의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그 틈 안에 애도실과 준비실을 구분해냈다. 긴 변을 기준으로 남측에는 기존 구조를 최대한 존중하며 애도실과 준비실을 구성하였고, 북측에는 기둥을 보강하고 벽을 철거함으로써 길이 100미터가 넘는 긴 홀을 조성하였다.
상상한 죽음의 세계를 유영하고, 다시 이곳, 현실로 돌아온다. 어둠 속을 헤엄쳐 나온 몸은 낯선 숨을 쉰다. 그리고 묻게 된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사생-死生-건축>의 궁극적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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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교수 작품평 |
인간의 삶과 죽음의 연결을 장소적 관계로 이해, 죽음이라는 두려움과 현실과의 괴리적 대상이 아닌 우리의 삶과 연장선 상에 두고자 도시 안에 봉안당을 구상하는 제안을 매우 진지하게, 그리고 매우 세밀하게 서술한 작품입니다. 건축의 공간과 형식을 드러냄에 있어 그에 담겨있는 함의의 의미와 가치를 사회와 결속해 구상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기 마련인데, 학생으로서 쉽게 전개하기 어려운 건축 사고의 프로세스를 담담하게 전개해 나아갔고, 그 속에서 남산맨션(남산 되살리기 사업에서 용케 살아남은 몇 안되는 사람 사는 시설)이라는 삶의 공간을 현생 다음의 거주 공간으로 윤색해 나아가는 일련의 구상 과정, 죽음이 거처하는 공간 그대로 머물지 않고 지금 현재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존재들과의 조우의 방식과 각자 공간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디자인 구상, 또한 프로젝트의 성격과 본인이 구상한 대상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공간과 조형의 절제미 등 구상의 의도가 건축으로 완성되어가는 동안 연속, 일치되도록 노력해 온 점 등을 통해 완성도 높은 결실의 수작을 거두는 기회가 되었다 믿습니다. 작품의 출발부터 결실의 과정을 온전히 지켜본 지도 교수로서 자신있게 추천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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