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설명 |
천연기념물과 인간문화재 등은 모두 국가유산이라 불리며, 역사적 가치를 지닌 사적과 산성 문화재 역시 이에 포함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경복궁 안뜰에서의 공연, 광화문 광장에서의 미디어 파사드와 야간 전시 등 국가유산을 다양한 문화 활동을 위한 오픈 스페이스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손대지 못할 소중한 재화로 여겨졌던 국가유산이 이제는 공공재의 의미를 지니며 시민과 교류하는 장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 활동은 많은 방문객과 활발한 교류를 필요로 하며, 교통 인프라와 기반 시설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모든 문화재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아니며, 특히 외곽에 위치한 문화재들은 보존이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방치된 채 고립되어 있다.
충청과 강원 지역은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명산과 국립공원, 다양한 산지 공원을 품고 있다. 이 지역은 오래전부터 산지를 오픈 스페이스로 활용해왔지만, 산성 문화재들은 물리적 완전성 보호라는 이유로 별다른 계획 없이 버려져 왔다.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교류와 방문이 차단된 산성은 보존이 아닌 방치의 형태로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충청 지역은 삼국시대에 각 나라의 경계지였던 곳으로, 많은 산성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본 프로젝트가 주목한 기준은 성벽의 규모였다. 산성의 방어적 태도와 폐쇄성은 오랜 세월과 훼손으로 약화되었으나, 동시에 도심지의 국가유산들이 공공의 공간으로 재해석되는 시대의 흐름과 중첩되어 새로운 의미를 보여준다. 충북 보은에 위치한 삼년산성은 성벽 폭 6~10m, 높이 13~20m에 이르는 규모로 축조되었다. 본 프로젝트는 이러한 역사적이면서도 지리적으로 고립된 장소를 다시 활성화하는 방안에 대해 제시하고, 그 본질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설계 방법론을 탐구하고자 하였다.
산성은 본래 그 안의 물자와 마을, 생활을 지키며 나아가 민족의 존속까지 보존하기 위한 방어 시설이었다. 이 고유한 역할과 현재의 고립성은 오히려 내향적이고 보안적인 성격의 ‘수장고’와 적절히 맞닿아 있다. 수장고는 보존과 관리 체계를 기반으로 유물을 보호하는 시설이며, 산성의 본래 기능과 장소성을 존중하는 개방형 공간으로 설계될 수 있다.
프로젝트는 산성의 역사적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경사지에 유물을 위한 방어적 시스템을 제안한다. 산성이 지녔던 제어, 저장, 집합의 요소를 프로그램에 대응시켰다.
제어(Control) : 오피스 블록은 차량 진입을 관리하며 유물 반입과 상태 확인을 담당하는 거점이다. 이는 전통 산성의 집수지 개념에서 착안했으며, 물류와 업무 공간을 포함한다.
저장(Storage) : 계단식 논에서 영감을 얻은 네 개의 수장고는 경사지에 매입되어 아치 구조 전시 공간, 설비 공간, 자동화 지하 수장 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이 블록들은 유물 운반을 위한 지하 통로를 통해 연결되며, 분리되어 있으나 연속적인 유물 보존 공간이다.
집합(Collective Memory) : 캠퍼스 블록과 외부 전시 동선은 부서진 성벽의 끝으로 이어진다. 숲과 유물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건축은 사유적·영적 마무리를 형성하며, 캠퍼스 블록은 개방형 연구실, 라이브러리, 교육 공간, 상부의 사찰로 구성된다. 이는 과거 사찰이 수행과 집단적 결속의 장소였음을 드러낸다.
프로젝트는 과거를 기억하고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산성의 봉우리에 무덤처럼 매장된 수장고를 제안한다. 폐쇄적이고 방어적이지만, 산성을 존중하는 산행자들에게는 땅이 간직한 보물들을 관람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제공하여 환영하며, 이용자들과 장소의 기억을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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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교수 작품평 |
본 프로젝트는 충청북도 보은의 삼년산성을 대상으로, 활용도가 낮고 고립된 문화재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해당 문화재와 그 역사적 맥락을 존중하는 건축적 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물리적 폐쇄성과 역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수장고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일부 외부와의 접점을 허용하는 ‘개방형 수장고’ 개념을 제안하였다. 유물 보존에 중점을 두면서도, 제한적 개방을 통해 연구·교육·전시 등 다양한 활용을 가능하게 하는 개념을 바탕으로 산성 내부에 존재했던 오픈 스페이스(구덩이, 계단식 논, 사찰 마당)의 형태와 기능을 모방하여 오피스, 스토리지, 캠퍼스 빌딩으로 구성하였으며, 각각 유물 수집과 행정, 분류와 관리,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는 시설로 기능한다.
김정훈 학생의 계획안은 역사적 장소의 단순한 복원을 넘어 방어와 보존이라는 본질적 의미를 기념하며, 과거 이곳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한 우수한 건축설계 프로세스와 설계 방법론이 돋보이기에 대한건축학회 학생작품전 출품작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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