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계개요 |
국민 10명 중 4명은 정신질환을 겪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정신질환은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특별한 경우가 아닌 보편적인 문제로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여전히 정신질환에 관한 강한 부정적 인식은 분명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치료가 필요한 많은 이들에게 있어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이미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 또한 높은 장벽을 마주하고 있다. 이들의 치료환경은 대체로 폐쇄적이며, 자유가 제한된다. 일상의 작은 행동조차 의료진의 감시 아래 이루어지며, 환자들 간의 교류 또한 제한적이다. '지역사회로의 복귀' 가 이들의 궁극적 치료목표이나, 외부와 단절된 환경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사회로 나아가지 못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이처럼 현대인과 정신질환 환자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존재하며, 이는 단순한 심리적 거리감 뿐 아닌, 물리적 공간의 단절에서 비롯된 문제이기도 하다. 기존의 정신의료기관은 그들 사이의 접점을 형성할 물리적 공간이 없으며, 이러한 부재는 경계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게 된다. 이에 따라 현대인과 환자, 지역사회와 정신의료기관을 연결하는 접점 공간 조성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접점 공간이란 현대인과 정신질환 환자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상호작용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치료의 공간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영역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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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설명 |
[설계대상지]
설계 대상지는 동대문구 청량리동 46으로 (구)청량리 정신병원이 위치해있던 대지이다. (구)청량리 정신병원은 국내 1호 정신의료기관으로서 정신병원의 산 역사로 불린다. 기존의 정신의료기관은 도심의 외곽으로 밀려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전형적 형태를 띄지만, 청량리 정신병원은 저층 주거단지로 둘러싸인 지역사회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지역사회와 정신의료기관을 연결하는 접점 공간 조성에 있어 지리적 이점이 있다고 판단했고, 지역사회와 공존하며 대지의 역사적 맥락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정신의료시설의 형태를 제안하는 것에 있어 적합하다고 보았다.
[작품설명]
정신질환은 더 이상 예외적이거나 특수한 문제가 아닌, 현대사회 전반에 걸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낙인 속에 머물러 있으며, 이는 공간적・사회적 분리를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정신의료기관은 대부분 도시 외곽에 위치하거나,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지역사회와의 단절된 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환자의 회복을 지원하기보다는 오히려 고립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본 설계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 정신질환 환자와 지역사회가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는 ‘접점 공간’의 조성을 핵심 목표로 한다. 대상지인 청량리 정신병원 부지는 거주지 중심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2m 이상의 담장으로 외부와 차단되어 지역사회로부터 철저히 고립되어 있었다. 폐원 이후에도 주민들 사이에 부정적 인식이 남아 있었으며, 이는 폐병원이 지역 속에서 여전히 단절의 상징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본 설계는 먼저 기존 담장을 철거하고, 단절된 보행 동선을 회복함으로써 공간의 개방성과 사회적 연결성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나아가 주민 편의시설, 문화시설, 노유자시설, 일상 훈련시설 등을 경사 지형을 따라 다층적으로 배치하여, 환자와 주민이 물리적・심리적으로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리커버리 커뮤니티를 형성하였다.
특히 부지 내 경사지를 적극 수용하여, 서로 다른 레벨의 건축물들이 골목길과 마당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계획하였다. 이 골목길은 단순한 동선을 넘어서, 주민과 환자가 함께 걷고, 마주치며, 교류할 수 있는 ‘일상 속 치유의 장면’을 만들어내는 공간적 장치로 작동한다. 더불어 유사한 기능의 프로그램들을 소규모 클러스터로 구성하고, 그 중심에 다양한 성격의 마당을 배치함으로써, 자발적이고도 우연한 만남의 기회를 극대화하였다.
건축적으로는 병원시설과 주민이용시설 간의 공간적, 시각적, 심리적 경계를 완화하는 데 집중하였다. 예를 들어, 개방병동과 연계된 리커버리 아카이빙 전시장, 북카페, 열린도서관, 우체국 등은 증상 호전 환자들이 직접 참여하고 운영하는 구조로 기획되었으며, 이를 통해 치료와 일상이 자연스럽게 맞닿는 공존의 장이 형성된다.
또한 병원시설은 기능에 따라 수직적으로 분산 배치되었으며, 지역주민이 진입하는 동선에는 개방성과 투명성을 부여하여 심리적 저항을 최소화하였다. 병원 상부에는 보호 및 반보호 병동, 노유자시설 등을 배치하고, 하부에는 주민과 함께 이용 가능한 프로그램 시설을 배치함으로써, 병원 전체가 지역과 연결된 다층적 치유 구조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결론적으로 본 설계는 정신의료기관을 단순한 치료의 공간이 아닌, ‘공공적 치유의 장소’로 확장할 수 있는 건축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공간을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환시키는 실천이자, 환자의 회복과 자립을 지원하는 물리적 기반이 될 수 있다. 향후 정신의료시설은 폐쇄와 분리가 아닌, 지역사회와의 상호작용과 공존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본 연구는 그 새로운 유형의 하나로서, 지역과 함께 작동하는 공공 치유 공간의 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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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교수 작품평 |
본 설계는 청량리 정신병원 부지를 대상으로 기존 정신의료시설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대안을 제시한 점에서 건축적·사회적 의의가 크다. 정신질환자가 사회적 타자로 분리되는 현실 속에서, 기존 기관이 고립·폐쇄적으로 운영되어온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건축적 개입으로 극복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특히 청량리 정신병원의 역사성과 제도적 맥락을 설계 출발점으로 삼고, 담장 제거와 보행 동선 회복을 통해 환자와 지역사회의 상호 인식을 가능케 한 점은 공간이 사회적 낙인을 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경사지 조건을 활용해 주민 편의, 문화, 노유자, 훈련시설을 중첩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새로운 리커버리 커뮤니티 형성을 도모하였으며, 이는 공간 네트워크의 통합성과 상호가시성을 실증적으로 구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골목과 마당을 통한 일상적 풍경의 재구성 또한 치유를 생활세계로 확장하는 구체적 건축 실천으로 의미가 크다. 결과적으로 본 작품은 정신의료시설을 치료의 장에서 공공적 치유의 장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건축적 유형을 탐색한 성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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