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계개요 |
Unconditional Hospitality: Placemaking Through Prop-like Spaces
일만을 위한 도시, 테헤란로는 지구단위계획과 역세권 개발 속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성장했으나, 반복된 박스 구조 속에서 맥락과 관계를 잃고 인간을 대체 가능한 존재로 전락시켰다. 제도적 경계와 위계는 머무를 수 없는 도시를 만들었으며, 경기 침체·주 4.5일제·재택근무 확산은 기존 구조를 무력화시켜 공실률만 높이고 있다.
심연의 사회적 지형이 드러나는 테헤란로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능 재배치가 아니다. 걷기·머무름·만남 같은 일상의 행위를 가능케 하는 유동적 자리매김, 그리고 외부인을 환대하는 소도구적 공간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건물 저층부의 골조를 열어 환대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그 속에서 절대적 환대를 구현한다.
소도구적 공간은 세 가지 전략 '드러내기, 감추기, 위장하기'로 형성된다. 드러내기는 박스 구조와 가려진 삶의 흔적을 열어 회랑적 여백과 관계의 흐름을 복원하는 것이며, 감추기는 도시 표면의 위계를 흐려 다양한 관계와 일상이 공존하도록 만든다. 마지막으로 위장하기는 러닝트랙과 샤워룸 같은 장치를 마련해 익명성을 보장함으로써, 누구나 낙인 없이 자신을 새롭게 규정하고 환대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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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설명 |
[이 시대의 중요한 가치, 절대적 환대]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이라는 개념이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인정 속에서 형성된다고 보았다. 사회는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자리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을 ‘사람’으로 만든다. 이 맥락에서 환대는 단순한 친절이나 시혜가 아니라, 타자가 사회적 자리를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절대적 환대란 상대의 신분, 배경, 보답 가능성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환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공간 제공이 아니라, 환대받은 사람이 다시 환대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사회적 성원권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절대적 환대를 방해는 위치잡기와 사회적 지형]
그러나 환대는 모든 이에게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환대는 특정한 조건과 규범에 따라 제한되며, 환대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한다. 이는 환대를 특권화하여 일부 집단만이 사회적 성원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구조를 강화한다. 경제적·문화적·제도적 장벽은 환대를 선별적으로 작동하게 만들고, 그 결과 어떤 이들은 사회적 관계에서 배제된다. 이러한 배제는 사회적 지형을 고착시키며, 사람들로 하여금 지나갈 수 없거나 머물 수 없는 장소를 만들어낸다.
[일만하는 도시, 테헤란로]
테헤란로는 오랫동안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도시 전략의 상징이었다. 지구단위계획과 역세권 개발은 이곳을 심연의 사회적 지형으로 만들었고, 반복되는 박스 구조는 공간을 기능으로만 환원시켰다. 사람은 역할로 대체되며 누구나 쉽게 교체 가능한 존재로 전락했다. 드나들 수는 있으나 머무를 수 없는 도시, 청소부와 같은 비가시적 노동자들이 소외되는 도시, 억눌린 욕망과 꼬여버린 감정이 성매매 업소, 접대 문화, 상징적 주소지 집착으로 배출되는 도시가 바로 테헤란로다. 절대적 환대는 이곳에서 작동하지 못한 채, 제도적 경계와 보이지 않는 위계 속에서 차단되어왔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주 4.5일제 도입, 재택근무 확산, 경기 침체는 기존 질서를 무력화시켰고, 공실률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앞으로 테헤란로는 업무 기능이 축소되며 비워지는 공간이 더욱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를 심연으로 방치하는 대신, 새로운 자리매김이 가능한 공간으로 재구성한다면 이 거대한 도시 체적은 버려지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유지될 수 있다.
테헤란로는 이제 ‘일만 하는 도시’가 아니라 다양한 삶의 레이어가 공존하는 ‘일도 하는 도시’로 전환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능의 재배치가 아니라, 걷기·머무름·만남과 같은 인간 본연의 활동을 회복하고, 이를 통해 서로를 환대하는 상호작용의 질서를 구축하는 일이다.
[전략: 소도구적 공간을 통한 자리매김하기]
이를 위해 고프먼의 스티그마(Stigma) 개념에서 제시된 ‘소도구’의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고프먼은 소도구를 개인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감추고, 때로는 새로운 역할을 탐색하는 데 활용되는 물리적·상징적 장치로 설명한다. 특정한 기능을 가진 공간이 소도구로 활용될 때, 새로운 관계 형성이 가능해지고 머무를 수 없었던 공간은 머물 수 있는 가능성을 열게 된다.
따라서 환대의 인프라를 구축한 뒤, 그 위에 소도구적 공간을 삽입함으로써 환대의 장을 형성하고자 한다.
1) 드러내기: 반복된 박스 구조 속에 가려진 삶의 흔적과 감정을 다시 보이게 하는 전략이다. 저층부 골조를 열어 회랑처럼 비워내고, 이를 새로운 공중 보행 인프라와 연결한다. 건물과 건물을 매개하는 길 위에서 잊힌 흐름과 관계의 여백이 다시 자리 잡는다.
2) 감추기: 테헤란로에 깊게 각인된 위계와 경계를 흐리거나 가려내는 전략이다. 드러난 골조들을 잇는 보행 인프라는 개별 건물의 경계를 희석시키고, 도시와 건물 사이의 단단한 경계선을 지운다. 이를 통해 공간은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중립적 장으로 재편된다.
3) 위장하기: 누구나 익명성과 회복을 얻을 수 있는 탈주의 조건을 마련하는 전략이다. 존재 자체로 환대받을 수 있는, 공공과 공유의 중간 영역이 도시 곳곳에 위장된 형태로 들어선다.
이러한 전략은 구체적 장치로 실현된다. 러닝 트랙과 샤워룸, 휴식을 위한 정원, 건물 깊숙이 빛을 끌어들이는 빛우물, 발코니 오피스, 세로수길 같은 계단 골목 등이 저층부와 연결된다. 그 결과 건물 간 경계는 흐려지고, 경제적 가치로 설정된 위계는 해체된다. 공용과 공유공간이 결합하며, 이곳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던 경계 또한 사라진다. 도시와 건물의 경계부는 해체되어 누구나 걸어 들어가 머무르고 일할 수 있는 열린 구조로 변모한다.
결국 테헤란로의 절대적 환대는 단순한 기능적 재배치가 아니라, 도시적 경계와 위계를 허무는 건축적 개입 속에서 가능해진다. 드러내기·감추기·위장하기의 전략은 테헤란로를 다시 사회적 순환의 장소로 회복시키며, 환대의 인프라로 작동한다. 이는 도시를 다시 살아 있는 관계망으로 만드는 새로운 건축적 질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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