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설명 |
[전제]
서울의 도시는 수많은 인프라가 교차하고 응축되는 거대한 장치다. 고속도로, 철로, 빗물펌프장, 수문, 유수지 같은 구조물들은 효율과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우리는 그것을 무심히 지나치며 배경처럼 소비한다. 그러나 바로 이 무심한 풍경 속에, 서울이 품은 도시성의 본질이 담겨 있지 않은가? 거대한 웅덩이, 단절된 선들, 속도의 교차와 정적의 대비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감각을 다시 일깨워주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인프라적 교차의 장소를 통해, 우리가 망각해온 도시의 본질에 다가가고, 그 감각을 몸소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제안]
서울 서남부, 개봉 빗물펌프장과 유수지가 겹쳐 있는 장소에서 구체화한다. 이 지역은 서울의 외곽부와 광명시의 경계에 위치하며, 1호선 철로, 남부순환로, 고가도로가 서로 교차하는 거대한 인프라의 집적지다. 그 내부에는 장마철에만 기능하는 세 개의 유수지가 연속적으로 파여 있으며, 평소에는 공허한 웅덩이로 방치된다. 주변은 고층 아파트 단지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목감천을 따라 세워진 약 8m 높이의 옹벽은 하천과 생활권을 단절시켜버렸다. 이러한 조건은 단순히 불편함이나 결핍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가 효율과 확장만을 추구하며 남겨둔 본질적인 풍경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장소를 감추거나 미화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로, 도로, 수문, 펌프장, 옹벽, 유수지가 만들어낸 거대한 선과 축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 흐름을 따라 건축적 조직을 확장한다. 각 인프라의 선형적 특성을 관찰하여, 그것을 연장하거나 강조하는 방식으로 공간의 뼈대를 형성한다. 수문이 물을 제어하기 위해 만든 방향성, 펌프장의 대각선적 기계 장치, 고가 하부의 거대한 기둥들은 더 이상 기능적 장치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보행 동선과 공간의 제스처로 이어진다. 이 축들이 겹치고 교차하는 지점에서 사람들은 도시의 본질적 모습을 낯설게 인식하게 되고,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이 사이트는 고척돔과 인접해 있어 특정 시간대에는 대규모 인파가 몰리고, 안양천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와 조깅 동선이 유입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는 이 흐름들을 받아들이며, 유수지 중심부와 연결하는 새로운 보행 네트워크를 제안한다. 상부에는 공중 보행로가 설치되어 사람들이 깊은 보이드를 내려다보거나, 이동 도중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전망대와 휴식 공간이 된다. 이 보행로는 단순히 양쪽을 잇는 브릿지가 아니라, 인프라의 단절을 역으로 드러내면서 그 속으로 사람들을 유도하는 장치다.
[전략]
첫 번째 전략은 인프라의 축을 드러내고 강화하는 것이다. 수문이 가지는 방향성은 단순히 물을 통제하기 위한 기능이 아니라, 흐름을 가리키는 강한 선으로 읽힌다. 펌프장의 기계 장치와 컨베이어 벨트의 대각선적 상승 또한 하나의 기하학적 질서로서 공간을 정의한다. 나는 이러한 축들을 단순히 기록하는 차원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들을 연장하고 중첩하여 도시의 숨겨진 리듬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인프라의 거대한 스케일은 가리지 않고 강조된다. 고가 하부의 기둥들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데, 나는 그 러프한 물성과 중량감을 그대로 수용해 새로운 구조적 언어로 삼는다. 이 거대한 구조 위에는 주민들이 올라설 수 있는 보행 데크와 휴식의 시설을 제안하여, 단순히 거대함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체험하게 만든다. 빗물펌프장의 설비 또한 외부로 드러내어 사람들이 그 기계적 장치와 맞닥뜨리며, 지금껏 무심히 흘려보냈던 도시 인프라의 규모와 낯섦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한편, 유수지 공허부 옆에 세워지는 매스는 공허의 깊이를 한층 강화하며, 기존과 다른 감각적 대비를 체험하게 한다.
두 번째 전략은 도시의 다양한 속도 위에 사람들의 흐름을 겹치는 것이다. 남부순환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연속적인 속도, 철로 위를 달리는 열차의 진동과 굉음, 계절마다 변화하는 물의 유속과 수위는 본래 사람의 신체적 경험과 단절된 리듬이다. 여기에 나는 경사로, 보행로, 그리고 상부의 공중 보행교를 삽입하여, 사람들의 신체를 이 이질적인 리듬 속으로 직접 노출시킨다. 특히 공중 보행로는 단순히 양쪽을 잇는 브릿지가 아니다. 유수지의 깊이를 내려다보며 멈추는 전망대가 되기도 하고, 인프라의 하부에 드리운 그늘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터가 되기도 한다. 이 보행로는 이동의 경유지인 동시에 하나의 활동의 무대이며, 기존의 ‘목적성만 있는 동선’을 넘어서는 체험의 공간이다. 사람들은 안양천 하부에서부터 이어지는 경사로를 따라 오르며 지하철의 진동을 느끼고, 고가 하부에서는 거대한 기둥 사이로 몸을 지나며 구조적 압박감을 경험한다. 이러한 경로의 확장은 단순히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의 연결이 아니라, 도시에 숨겨진 레이어를 관찰하고, 감각적으로 탐구하며, 낯선 경험을 겹겹이 수집하는 여정이 된다.
세 번째 전략은 응축의 중심을 머무를 수 있는 장소로 전환하는 것이다. 유수지는 대부분의 계절 동안 비워져 있으며, 그늘조차 없는 거대한 웅덩이로 존재한다. 나는 이 황폐한 환경을 보완하기 위해 물과 바람을 이용한 기후 장치를 도입한다. 지중해의 카나트 시스템을 변형하여 여름철 밤의 냉기를 저장하고, 낮에는 이를 끌어올려 공간을 서늘하게 유지한다. 또한 철로 위를 달리는 열차가 만들어내는 바람을 건축적 장치로 흡수해 자연 환기와 순환을 만든다. 이를 통해 형성된 도심 속 냉각 인프라는 더운 여름 주민들에게 기후 대피소로 기능하며, 단순한 기반시설이 아닌 사람을 환대하는 장소로 변모한다.
여기에 더해, 응축의 중심은 단순히 독립된 시설이 아니라 주변의 이동 동선과 주민시설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설정된다. 안양천에서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 아파트 단지에서 내려오는 생활 동선, 고척돔을 오가며 발생하는 인파의 흐름이 모두 이곳으로 스며든다. 교차하는 동선들은 단순히 통과만 하지 않고, 유수지의 보이드와 시설이 제공하는 공간적 체험에 자연스럽게 끌려 들어오도록 유도된다. 이 지점에서 주민들의 일상적 흐름은 프로그램적 흐름과 겹쳐지며, 응축의 중심은 도시 속의 교차 무대가 된다. 광장, 플리마켓, 문화 행사, 휴식 공간 등이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주되며, 단순히 경유지가 아닌 머무름과 교류의 장소로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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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교수 작품평 |
김동현은, 개발의 논리가 앞세우는 기준에 의해 획일화되는 서울의 풍경을 비평하며, 함께 사는 다른 방식을 모색하기 위한 방법으로 아주 가깝게 살아가지만 보이지 않다고 여기는 도시 인프라에 주목합니다. 고속도로, 철로, 유수지, 펌프장 등 공허부와 그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층위들, 그들에 의해 단절되거나 이어지는 모순된 맥락들이 오히려 우리 도시의 본질적 풍경임을 드러냅니다. 논리적 설득력과 직관적 감성이 공존하는 설득력있는 건축 제안을 통해 기계음과 진동, 물의 흐름과 고속 교통의 속도, 그리고 유수지의 정적인 공허함을 중첩하며, 고요한 공허부에 역동적 리듬이 살아있는 독특한 감각적 풍경을 제안합니다. 좋은 환경이자 도시로서 인프라-건축은 도시의 경직된 체계 속에서 무기력한 개인들에게 힘을 주는, 서로를 환대하는 건축의 원형을 제시하는 드로잉이 아름답습니다. 궁극적으로 사회적 응축의 장소로서 전환되어 도시가 숨겨온 낯선 리듬을 체험할 수 있는 탈주의 장치를 시도하는 대담함을 보여줍니다. 그 과정과 결과물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김동현의 작품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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