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계개요 |
서울은 오랜 시간 동안 정보, 기술, 서비스 중심의 도시로 발전해 왔다. 이 과정에서 많은 제조업 시설이 도심 외곽이나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도심은 점차 상업 및 주거 중심의 공간으로 변화했다. 실제로 서울의 성수동, 문래동, 을지로 등은 전통적인 제조 기반 위에 새로운 창작 산업이 결합하여 독특한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공방, 메이커스페이스, 디자이너 스튜디오 등이 함께 공존하며, 제조업이 도시 문화와 상업, 커뮤니티와 연결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도심 내 제조시설은 소비자와의 거리가 가깝고, 물류 및 수리·유지보수가 신속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접근성이 뛰어나다. 또한, 기술 기반 창업자, 청년층, 이주민 등에게 현장 중심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가치도 크다.
이처럼 도시 안의 제조시설은 단순한 생산공간을 넘어서, 지역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도시 회복력 확보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서울의 도심 제조시설이 여전히 필요하며, 앞으로의 도시 속 제조공장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서울 도시 안에서 제조업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고민하는 데서 시작한다. 특히 땅이 부족하고 밀도가 높은 서울 도시에서는 기존의 넓게 펼쳐진 공장 대신, 위로 쌓는 방식인 ‘수직 제조’가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수직 제조를 가능하게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산업 건축물, 도심형 인더스트리 플라자(Urban Industry Plaza)를 제안한다. 최근에는 도심에서도 소규모 생산이나 고부가가치 산업이 활발해지고 있으며, 이는 도시 내에서도 생산 활동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더스트리 플라자’라는 새로운 개념의 공장 건물을 정의하고, 그것이 단순한 생산시설을 넘어 도시 속에서 산업, 사람, 커뮤니티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 개발을 통해 서울 도심 속 수직 제조공장의 지속 가능한 활용 모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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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설명 |
미래 제조공장은 모듈형 구조와 가변적인 공간 구성을 기반으로, 벽체의 위치 및 층고를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구조적 유연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제조, 창고, 사무, 전시 등 다양한 기능으로 전환을 가능하게 하며, 업종 간 다른 공간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층별 용도 조정 또한 용이하게 만든다. 이는 다변화되는 산업환경 속에서 다양한 업종의 제조공장이 유입될 수 있는 기반이 되며, 궁극적으로 산업 공간의 지속 가능성과 수용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나아가 미래의 제조공장은 단순한 생산의 장소를 넘어, 사람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변화해야 한다. 제조 공정은 폐쇄된 구조가 아닌, 외부와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개방형 형태로 구성되어야 하며, 공장 내 설비와 기계들은 단순한 기능적 도구를 넘어서 건축적 요소로서 드러남으로써, 시각적 상징성과 공간적 경험을 제공하는 소통의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제조 환경에 적합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제조 과정을 외부에 개방하여 시민들에게 생산 활동을 직접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는 기존의 폐쇄적이고 기능 중심이었던 공장의 이미지를 탈피하여, 주변과 소통하며 새로운 형태의 경험과 인식을 유도하는 공장으로 전환하였다.
제조공장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그 안에는 수많은 장치들이 통합적으로 작동한다. 특히 도심형 수직 제조공장은 한정된 대지 위에 복합적인 기능을 수직적으로 배치해야 하므로, 장치의 공간적 배치와 형식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제조 공장에 들어가는 장치들을 기능별로 분류하고, 각각의 ‘타이폴로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장치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기능하기보다는, 수직 공장 내에서 상호 연결되어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으로 작동하게 된다. 따라서 수직 제조공장을 설계함에 있어장치의 타이폴로지를 이해하고, 이를 공간적으로 조화롭게 배치하는 것이 핵심 설계 전략이 된다. 이는 단지 기능적인 배치를 넘어서, 건축 공간과 제조 시스템이 통합된 새로운 공장의 유형을 제시하는 출발점이 된다.
따라서 각 제조 환경에 필요한 장치들은 해당 환경에 적합한 기능적 지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들 간의 유기적인 연결을 통해 새로운 프로그램적 가능성을 창출할 수 있다. 이러한 연결부는 인체 동선을 위한 계단이나 물류 흐름을 위한 컨베이어와 같은 요소로 구현될 수 있으며, 상이한 설비들의 결합을 통해 자동화 물류 시스템과 작업 공간이 통합되어 물류 동선이 최적화되거나, 공조 시스템과 저장 공간이 연계되어 온도 유지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등 복합적이고 효율적인 공간 구성이 가능해진다.
공장 내에서 다양한 시설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친환경 요소가 형성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환기 시스템과 물류 이동 경로가 결합되면 특정 공간의 공기 순환이 원활해지며, 실내에 자연스럽게 바람이 흐르는 ‘쾌적한 공간’이 만들 어질 수 있다. 특히 외부와 연결된 레벨에서 환기구가 바람길을 유도할 경우, 인위적인 설비 없이도 바람이 유입되는 자연형 환기 구역이 형성된다. 또한, 공장 내부의 열원(기계설비, 용광로 등)으로 인해 특정 공간은 온도가 상승하는데, 이러한 열 순환은 주변 공간의 온도를 자연스럽게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이처럼 열이 집중되는 공간은 겨울철 ‘온열 존’으로 활용될 수 있고, 반대로 냉방 시스템이 가동되는 영역은 여름철에 시원한 ‘쿨링존(Cooling Zone)’으로 작동해 사용자에게 쾌적함을 제공한다.
공장의 물류 흐름과 설비 구조가 수직적으로 확장되면서, 기존에 활용되지 않던 예기치 못한 공간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물류 시스템 사이사이에 생기는 틈 공간은 단순히 비워두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비공식적 휴게 공간이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는 공장이라는 기능 중심의 공간에서 사용자의 경험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공장 내부에서는 반복적인 기계음, 로봇의 작동음, 컨베이어의 움직임 등에서 일정한 리듬이 형성되는데, 이러한 소음 패턴이 오히려 사용자에게 백색소음처럼 작용하며 긴장을 완화시키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환경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소음이 소외감을 주는 요소가 아니라, 익숙해질수록 공감각적으로 편안함을 주는 배경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다양한 시설들이 의도치 않게 결합되면서 새로운 기능이 생성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공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특정 구역의 난방 시스템과 연계하면 별도의 에너지 투입 없이도 따뜻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이러한 자율 에너지 존은 지속가능한 공간 운영 방식의 하나로 볼 수 있으며, 냉난방이 필요한 사무 공간이나 휴게실 등에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또한, 공조 시스템과 자연광이 함께 작용하는 특정 조건에서는 실내에서도 식물이 자라는 환경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공간은 예상치 못한 생태적 요소를 만들어내며, 산업 시설 안에서 작은 녹지나 자연의 경험을 제공하는 작은 오아시스로(Oasis)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도심형 인더스트리 플라자(Urban Industry Plaza)’는 수직 제조공장에 들어가는 각 장치가 제조를 위해 지원을 하기도 하지만, 장치들에 의해 생겨나는 공간을 직원들을 위한 편의시설 제공 및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도심형 인더스트리 플라자를 제시하며, 도시의 산업기반 회복과 지속 가능한 제조 생태계 조성을 위한 건축적 대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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