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설명 |
[사회적 맥락]
대한민국 농촌의 생산은 내국인 노동력의 공백을 메우는 이주노동자에게 크게 의존한다. 고용허가제는 인력을 구하지 못한 농가가 비전문취업(E-9)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이지만, 노동자는 입국과 동시에 특정 사업장에 귀속되고 사업장 변경과 체류 연장은 제한된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특히 농촌에서는 고용주가 일자리뿐 아니라 숙소까지 제공하기 때문에 고용관계가 노동자의 생활 전반을 규정하는 종속관계로 확장된다. 농장과 숙소가 같은 농지 안에 놓이면서 퇴근 이후의 시간도 노동으로부터 충분히 분리되지 못하고,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와 가설건물은 독립된 주거공간보다 농업 생산을 지속하기 위한 부속시설로 기능한다.
[현장 조사]
프로젝트의 대상지는 대규모 시설채소 농장이 밀집한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마산리 161-7번지 일대이다. 현장 답사와 인터뷰를 통해 숙소의 위치와 규모, 거주 인원, 농장과의 관계를 기록한 결과, 농지 내부에 분산된 16개의 가설 숙소에서 약 100명의 이주노동자가 생활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숙소는 도로와 마을에서 떨어진 채 경작용 비닐하우스 사이에 은폐되어 있었으며, 부족한 단열과 환기, 습기, 열악한 위생설비와 사생활 침해에 노출되어 있었다. 또한 숙소가 농지 곳곳에 흩어져 있어 함께 식사하거나 대화하고 각자의 문화와 종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공용공간도 부족했다.
[적정건축 전략]
이 문제를 고비용의 새로운 기숙사로 대체하는 것만으로는 농촌의 현실적인 조건에 대응하기 어렵다. 고용주는 적은 비용으로 농업 생산성과 직주 근접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반면, 이주노동자는 사생활과 안전, 단열·위생·기반시설이 확보된 생활환경을 필요로 한다. 본 설계는 두 주체의 요구가 교차하는 지점을 ‘적정 비용, 직주 근접, 인프라 개선, 공동체 형성’으로 설정했다. 여기서 적정건축은 단순히 저렴한 건축이 아니라, 현재의 생산구조와 비용 조건 안에서 거주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건축적 개입을 의미한다.
이에 16개의 가설 숙소를 개별적으로 보수하는 대신, 기존 비닐하우스의 밀도를 조절하여 세 개의 공동생활 거점으로 재편하고 그중 첫 번째 거점을 구체적으로 설계했다. 거점은 일터에서 300m 이내의 접근성, 경작지를 침범하지 않는 토지 이용, 토지 소유자와 농장주의 동의 가능성, 관정·전기·위생설비를 집약하고 확장할 수 있는 기반 조건에 따라 선정했다. 이를 통해 농업 생산을 유지하면서도 분산된 거주자를 모아 기반시설과 공동공간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농자재 카탈로그와 생활공간]
건축의 재료와 구법은 인근 철물점과 비닐하우스 농자재점, 공장에서 쉽게 구하거나 회수할 수 있는 자재에서 출발한다. 농업용 파이프와 클램프, 수동 개폐기, 샌드위치 패널, 스틸그레이팅과 폐목재 등을 규격화하여 농자재 카탈로그로 구성했다. 새로운 건축 시스템을 외부에서 들여오기보다 농촌에서 이미 사용되는 비닐하우스의 부품과 시공 방식을 주거에 맞게 재조합함으로써 쉽게 시공하고 보수·교체·확장할 수 있도록 했다.
생활공간은 작업 이후의 행위가 세척과 보관, 조리와 식사, 휴식과 교류, 개인생활로 단계적으로 전환되도록 배치했다. 지면에서 띄운 데크와 샌드위치 패널 개인실, 이중 비닐 외피 사이의 공기층은 습기와 열환경을 개선한다. 거주자는 수동 개폐기를 이용해 계절과 기후에 따라 외피를 열고 닫으며 채광과 환기를 직접 조절할 수 있다. 주방동의 개폐식 날개는 닫혔을 때 비와 바람을 막고, 열었을 때 조리와 식사 공간을 외부로 확장한다. 중앙 통로와 공용 거실은 빨래와 재배, 식사와 대화가 이어지는 공동생활의 중심이 되며, 개인실은 수면뿐 아니라 통화와 취미, 기도 등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는 일상을 수용한다.
[집의 조건]
이 프로젝트는 비닐하우스를 완전한 ‘집’으로 인정하거나 열악한 현실을 영속시키려는 제안이 아니다. 비닐하우스가 집이 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되, 당장 철거하거나 대체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 안전·위생·사생활·공동체와 거주자의 선택권이라는 ‘집의 조건’을 삽입하려는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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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교수 작품평 |
정세영 학생의 "A Home is not a Vinyl House"는 사회가 주목하지 않은 농촌 이주 노동자의 주거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이를 건축의 언어로 적확하게 풀어낸 수작입니다. 포천에 위치한 비닐하우스 단지를 직접 답사 및 인터뷰하며, 노동과 휴식의 경계가 무너진 이들의 삶을 세세하게 발굴하고, 이 기록의 과정에서 밀도 높은 현장리서치와 진정성을 졸업 작품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또한, 현실에 대응하며, 기존의 비닐하우스 매뉴얼, 구하기 쉬운 농자재를 조합한 설계전략을 통해, 현실적 조건을 아우르며 주거 및 공동체 공간을 개선하는 영리하고 따뜻한 '적정 건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건축을 통해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존엄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증명하고 모색해 낸, 매우 대견하고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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