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계개요 |
사람이 떠난 뒤에도 기억은 쉽게 비워지지 않는다.
함께 걷던 길, 오래 머물렀던 자리, 문득 떠오르는 목소리처럼 기억은 삶의 곳곳에 남아있다. 처음에는 선명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흐려지고, 사라졌다고 생각한 기억은 뜻밖의 순간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어쩌면 기억한다는 것은 하나의 모습을 오래 붙잡아 두는 일이 아니라, 달라지는 시간을 함께 지나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떠난 사람의 부재에 익숙해지고, 남겨진 기억의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고, 어느 순간 그것을 품은 채 다시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
사시사 四時思는 그 사이의 시간을 바라본다.
죽음을 하나의 끝으로 닫아두기보다, 떠난 이후에도 이어지는 기억과 삶의 시간을 하나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 건축은 그것을 붙잡거나 설명하기보다, 잠시 머물 수 있는 깊이와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여백을 만든다.
계절이 지나며 같은 풍경이 다른 얼굴을 가지듯, 기억도 같은 모습으로 남지 않는다. 흐려지고, 깊어지고, 때로는 다시 선명해진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계속 남는 것.
四時思.
네 번의 계절을 지나도 다시 떠오르는 생각.
기억이 머물고 변해갈 수 있는 공간을 지나
다시 삶으로 천천히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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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설명 |
[The Continuum : 이어지는 시간]
죽음은 한순간에 일어나지만, 남겨진 사람의 시간은 그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오늘날 장례는 안치, 화장, 봉안이라는 일련의 절차를 중심으로 빠르게 완결된다. 죽음은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되고, 기억은 특정한 장소에 보관된다. 그러나 애도는 정해진 시간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기억은 시간이 흐르며 희미해지고, 다시 떠오르고, 다른 모습으로 삶 속에 남는다.
사시사는 장례를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시간의 과정으로 바라본다.
떠난 사람을 마주하고, 머물고, 기억하고, 놓아주며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시간을 건축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기억을 영원히 고정하는 대신 변화할 수 있도록 두고, 애도의 끝을 규정하기보다 각자의 속도로 지나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
사시사에서 건축은 죽음을 보존하는 장소가 아니라,
죽음 이후 계속되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장소이다.
[The Coexistence : 삶의 표면, 기억의 깊이]
삶과 죽음은 서로 반대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간 속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사시사는 이를 Sectional Coexistence, 단면적 공존으로 공간화한다.
제주의 해안에서 건축은 지상에 하나의 거대한 장례시설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지형 아래로 내려가고, 그 위에는 산책과 휴식, 전시와 같은 일상의 풍경이 이어진다.
지상에서는 누군가의 하루가 계속되고,
그 아래에서는 누군가가 한 사람을 떠나보낸다.
두 시간은 직접 마주하지 않지만 완전히 단절되지도 않는다. 같은 땅을 공유하고, 서로 다른 깊이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지상은 삶의 표면,
지하는 기억의 깊이,
바다는 마지막 이별의 영역이 된다.
사시사는 삶과 죽음 사이에 벽을 세우기보다, 하나의 단면 안에서 서로 다른 시간이 공존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든다.
[The Passage : 애도의 깊이]
사시사에서 이동은 단순히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동선이 아니다.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속도를 만드는 과정이다.
유족은 일상의 영역에서 서서히 분리되어 도착과 준비, 머무름과 작별, 기억과 이별의 시간을 지나간다. 처음의 공간은 닫혀 있고 외부의 빛과 풍경은 절제된다. 깊이 내려갈수록 일상은 멀어지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자신과 기억을 향한다.
그러나 공간은 계속 닫혀 있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빛의 틈은 넓어지고, 천장은 높아지며, 외부의 풍경이 다시 공간 안으로 들어온다. 마지막에는 시선이 수평선과 바다를 향해 열린다.
어둠에서 빛으로,
깊이에서 표면으로,
머무름에서 다시 걸어 나가는 방향으로.
벽과 천장, 빛과 경사, 공간의 깊이는 장례의 기능을 담는 데 그치지 않고 애도의 시간을 조율하는 건축적 장치가 된다.
[The Return : 남겨지는 방식]
화장 이후의 흔적은 반드시 하나의 장소에 영원히 남아야 하는가.
사시사는 기억을 보존하는 방식보다, 기억이 어떻게 변화하며 남을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어떤 흔적은 토양 속으로 들어가 식물과 계절의 시간이 된다. 비와 바람을 지나며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하는 풍경으로 남는다.
또 다른 흔적은 육지를 떠나 바다로 향한다. 특정한 위치에 소유되거나 고정되지 않고, 물의 흐름 속에서 더 넓은 자연의 일부가 된다.=
토양과 바다는 서로 다른 방식의 이별이지만 하나의 태도를 공유한다.
남기는 것이 아니라 스며들게 하는 것.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도록 두는 것.
건축 역시 그 순간 완결되지 않는다.
사람이 떠난 이후에도 빛과 물, 식물과 계절은 계속해서 공간을 변화시키며 기억의 다음 시간을 만든다.
사시사는 그렇게 죽음의 끝을 만드는 대신,
기억이 다시 삶과 자연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건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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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교수 작품평 |
본 작품은 기존 장례시설이 일상과 분리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제주 해안의 장소적 특성과 해양장이라는 장례문화를 결합한 장례·추모공간 프로젝트이다.
계획은 지상과 지하 두 개의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공간적 구성을 넘어 제주의 장소성과 의례의 시퀀스를 상호연결하고 중합하는 층위로서 작용한다. 지상의 층위는 제주의 경관과 해안의 장소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조문과 추모객, 일반인을 포함한 방문자의 일상이 장소로 구현되도록 계획하였고, 지하의 층위는 장례와 추모의 시퀀스를 공간적으로 배치하여 의례 프로그램이 하나의 대지 안에서 공존하도록 계획하였다. 지상과 지하의 층위는 바다로 이어지는 공간적 시퀀스를 지나면서 하나로 중합되는 극적인 모멘텀을 이끌어낸다. 이를 통해 계획의 모든 요소들은 일상에서 추모로, 다시 제주의 자연으로 통합되는 완결성을 만들고 있다.
계획의 컨셉단계부터 장례시설은 기피시설이라는 인식을 벗어나 일상의 하나로서 사유의 공간으로 계획하고자 했던 생각은 이 작품을 통해 건축적으로 매우 완성도 있게 구현되었다. 컨셉과 계획, 공간 구성의 완결성, 제주라는 지역성의 해석 등은 학생 작품을 넘어서는 건축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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